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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연출, 이병헌 연기, 블랙코미디)

by girin3 2026. 3. 30.

솔직히 극장을 나서면서 이 영화가 왜 평점이 낮은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일부 관객들이 1~2점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내렸지만, 저는 오히려 이 작품이 2025년 대한민국 노동 시장의 민낯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유만수가 경쟁자들을 제거하며 던지는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은 단순한 변명이 아니라, 정리해고라는 구조적 폭력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인간성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여기서 정리해고란 기업이 경영상 이유로 일방적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영화는 이것이 단순히 일자리를 잃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 자체를 상실하는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영화 어쩔수가없다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엄혜란 차승원 포스터

온실과 분재가 말하는 인간 본성의 억압

박찬욱 감독은 영화 곳곳에 미장센을 통해 유만수의 내적 갈등을 시각화합니다. 미장센이란 프랑스어로 '무대 위에 배치하다'는 뜻으로, 영화에서는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의미를 전달하는 연출 기법을 말합니다. 제지업에 종사하는 만수가 온실에서 나무를 정성스럽게 키우는 장면은 그 자체로 모순입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나무를 베어야 하지만, 동시에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저는 특히 아내 미리가 넥타이를 조여주는 장면에서 배경에 놓인 분재나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분재는 나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억제하고 쇠줄로 묶어 인위적인 형태를 만드는 것인데, 감독은 이를 통해 사회적 규범이 인간의 본능을 억압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속 모든 나무가 자유롭게 자란 것이 하나도 없고 전부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분재라는 점은, 만수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사회 시스템에 의해 억눌린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죠.

만수가 손바닥에 적어둔 글귀들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세어본 결과, 만수는 긴장되는 순간마다 최소 5번 이상 손바닥을 훔쳐봅니다. 하지만 세 번의 살인을 마친 후 그의 손바닥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는 도덕적 억제 장치가 완전히 제거되었음을 의미하는데, 흥미롭게도 한국 심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의 도덕적 판단력은 평균 60% 이상 저하된다고 합니다. 만수의 변화는 단순한 악인의 탄생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낸 괴물의 탄생 과정인 것입니다.

소리의 대비로 드러나는 양심의 소멸

영화는 사운드디자인을 통해서도 만수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합니다. 사운드 디자인이란 영화에서 소리를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조율하여 분위기와 의미를 전달하는 기술을 말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는 이를 통해 인간의 양심이 소멸되는 과정을 청각적으로 구현합니다.

초반부 만수가 행복해하는 장면들을 보면 매미 소리, 풀벌레 우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 등 자연의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자연음은 점차 사라지고, 마지막 세 번째 살인에서는 주변 소리가 완전히 제거됩니다. 저는 이 장면이 가장 소름 돋았는데, 욕망만 남고 양심이 사라진 인간의 내면을 소리의 부재로 표현한 것이 너무나 직관적이었습니다.

결말부에서 만수가 공장 내부에서 귀마개를 끼는 장면은 이러한 변화의 정점입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제조업 근로자의 평균 소음 노출 수준은 85dB 이상이며, 이는 청력 손상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출처: 통계청). 하지만 영화에서 귀마개는 단순히 소음 차단 도구가 아닙니다. 주변의 소리, 즉 타인의 목소리와 자연의 경고를 차단하고 오로지 자신만 보호하겠다는 선언처럼 보이죠.

흥미로운 점은 아라라는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영화에서 가장 본능에 충실한 인물로, 남편에게 짐을 전부 떠넘기고 자신의 꿈을 좇지만, 정작 남편이 실직하자 노골적으로 무시합니다. 제 경험상 실제 한국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종종 목격하는데, 가족의 경제적 위기 앞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얼마나 잔인하게 드러나는지 영화가 정확히 포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라가 의도치 않게 만수를 세 번 도와주는 구조는, 악이 또 다른 악과 공생하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딸과 아들, 유전과 환경 사이에서

영화는 만수의 두 자녀를 통해 인간이 본성과 환경 중 무엇에 더 영향을 받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딸은 만수의 핏줄로 그와 똑같이 다른 사람의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하는 습관이 있지만, 결국 자신의 본능을 예술로 승화시킵니다. 반면 아들은 미리의 전남편 자식으로 원래 현실적이고 순응적인 성격이었지만, 만수의 양육과 범죄 목격을 통해 점차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저는 이 대비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행동유전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성격과 행동은 약 40~60%가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나머지는 환경과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행동유전학이란 유전자와 환경이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 분야입니다. 딸의 방에 제멋대로 자란 화분들은 억압받지 않은 환경에서 본성이 건강하게 발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아들이 결국 아빠의 주먹 인사를 받아들이는 장면은 환경이 본성을 바꿀 수 있음을 암시합니다.

특히 딸이 결말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은 박찬욱 감독이 제시하는 하나의 해답처럼 보였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악한 면도 있지만, 그것을 예술이나 창조적 행위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2025년 현재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높고, AI 기술의 발전으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있습니다. 원작이 나온 2000년대보다 상황이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만수의 "어쩔 수가 없다"는 주문은 단순한 핑계가 아니라 시스템적 폭력에 대한 절규로 들립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이병헌 배우의 연기력뿐만 아니라, 박찬욱 감독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객들이 다른 관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낮은 평점의 의미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WUaR8fNu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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