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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리뷰 - 일도 사랑도 돈도 없는데 왜 이렇게 따뜻한지..

by girin3 2026. 5. 17.

제목부터 좀 아이러니하잖아요. 복도 많지, 라는데 영화 속 찬실이는 일도 잃고, 사랑도 없고, 돈도 없거든요. 근데 보고 나서 이게 왜 복도 많지인지 이해가 됐어요. 화려한 성취 없이도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이야기예요. 감독 김초희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실화이기도 해요. 잔잔하고 따뜻한 영화예요.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포스터

 


이런 영화예요

찬실(강말금)은 저예산 예술 영화를 만드는 스타 감독의 오랜 프로듀서예요. 감독이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면서 찬실은 한순간에 일도, 경력도 다 잃어버려요. 영화사 대표에게 연락해봐도 "사실 pd 없어도 영화는 만들어져"라는 말만 듣게 되죠. 20년 가까이 영화 일에만 삶을 쏟아부었는데, 하루아침에 아무것도 없어진 거예요.

모아둔 돈도 없던 찬실은 홍제동 개미마을 쪽방으로 이사해서 가사 도우미로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해요. 그 집에서 여배우 소피와 친해지고, 소피의 불어 과외 선생님이자 단편영화 감독 영신과도 인연이 생겨요.

마흔이 넘도록 일만 하며 살아왔던 찬실에게 이제 처음으로 사람들과 밥 먹고, 산책하고, 술 한 잔 나누는 평범한 일상이 펼쳐지는 이야기예요. 그리고 밤마다 장국영 귀신이 나타나 찬실과 대화를 나눠요.


장국영 귀신이라는 신의 한 수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요소예요. 찬실이 외롭고 힘들 때마다 아비정전에서 속옷 차림으로 춤추던 장국영이 귀신으로 나타나서 말을 건네거든요. 처음엔 황당한 설정 같은데, 보다 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요.

"외로운 건 그냥 괴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찬실 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이 귀신의 대사들이 찬실의 감정을 대신 정리해줘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서사에 유머와 따뜻함을 동시에 불어넣는 신의 한 수예요. 엉뚱한 상상력인데 이게 또 너무 잘 어울려요.


이 영화의 대사들이 오래 남아요

"심심한 게 뭐 어때서요. 원래 소소한 게 제일 소중한 거예요."

영신이 오즈 야스지로 감독 영화를 이야기하며 하는 말이에요. 찬실은 처음엔 그 영화가 지루하다고 했는데, 이 대사를 들으면서 뭔가 달라지기 시작해요. 화려한 사건이 없어도, 엄마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심심하게 그린 영화가 사실은 가장 소중한 걸 담고 있다는 거죠.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행복이 아니에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찬실이 영화 인생을 돌아보면서 하는 독백이에요. 일로 갈증을 채우려 했는데 채워도 채워도 가시지 않았다는 고백. 이 대사가 영화 전체를 담고 있어요.

"좋은 누나 같아요." 영신에게 마음이 생겼는데 돌아온 말이에요. 이 짧은 한마디가 찬실이 얼마나 오래 혼자였는지를 느끼게 해줘요.

그리고 영신이 영화보다 중요한 게 많다며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정을 나누는 것,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도 오래 남아요. 찬실이 그동안 영화에만 삶을 쏟느라 놓쳤던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면이거든요.


잔잔하지만 그게 이 영화의 힘이에요

빠른 서사에 익숙한 분들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사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고, 밥 먹고, 걷고, 대화하는 장면들이 이어져요. 찬실이 영신을 좋아하게 됐는데 "좋은 누나 같다"는 말을 듣고 혼자 걸어가는 장면처럼, 현실은 계속 소박하고 담담하게 흘러가요.

근데 그 심심함이 이 영화의 정직함이에요. 특별한 일 없이 하루하루 버티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과정을 이 영화는 천천히 담아내요. 결국 찬실이 자신의 인생을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하는 장면에서 진짜 감동이 와요. 곁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는 밥 한 끼, 산책 한 번의 가치를 조용히 복원해내는 영화예요.


총평 - 나이 마흔의 찬실이가 결국 찾은 것들

일도 사랑도 돈도 없는 여자의 이야기인데, 보고 나서 오히려 위로를 받는 영화예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장국영 귀신의 말처럼, 이 영화는 거창한 성공이 아닌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정하게 그려줘요. 잃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이 영화는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가리켜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분들께 특히 추천해요. 힘들고 지칠 때 조용히 보기 좋은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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