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작"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틀어봤는데, 끝날 때까지 자리를 못 뜨겠더라고요. 2018년 개봉한 영화 게이트, 평점보다 관객수가 훨씬 적은 작품이지만 저는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같이 무거운 시기에 이렇게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코미디 영화가 얼마나 됩니까.

이 라인업, 실제로 보니까 다르더라
일반적으로 유명 배우 여럿이 한 작품에 모이면 오히려 각자의 색깔이 충돌해서 산만해진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게이트 캐스팅을 봤을 때도 그 걱정이 앞섰습니다. 정려원, 임창정, 정상훈, 이경영, 이문식, 김도훈. 이름만 보면 장르가 뭔지 모를 정도의 조합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앙상블 캐스팅(ensemble casting)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여기서 앙상블 캐스팅이란 각기 개성이 다른 여러 배우들이 동등한 비중으로 등장해 극의 균형을 맞추는 방식을 말합니다. 게이트가 딱 그 구조입니다. 한 명이 튀는 게 아니라 모두가 제 역할을 하면서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임창정의 연기는 다시 봐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동네 바보 규철로 나오는데, 사실 이 캐릭터가 검사라는 설정이 나중에 밝혀집니다. 제가 그 장면에서 헛웃음이 나왔는데, 억지 설정임을 알면서도 피식하게 되는 그 타이밍이 절묘했습니다. 배우가 설정을 살린 게 아니라 설정이 배우를 따라온 느낌이랄까요. 한국영화배우조합 기준으로도 이 정도 라인업을 중급 이하 예산 코미디에 모으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케이퍼 무비인데 왜 이렇게 허술하냐고? 그게 포인트입니다
케이퍼 무비(caper movie)라는 장르 용어가 있습니다. 케이퍼 무비란 금고 털기, 보석 절도 등 정교한 범죄 계획과 실행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 장르를 의미합니다. 오션스 일레븐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죠.
게이트는 이 케이퍼 무비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의도적으로 허술함을 연출의 도구로 씁니다. 제가 직접 봤는데, 작전 브리핑 장면에서 소원이 CCTV 위치와 금고 동선을 정확히 외워서 설명하는 장면은 꽤 설득력 있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행 단계에서는 예상 밖으로 일이 꼬이고, 그 꼬이는 방식이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게이트에서 웃음을 만드는 핵심 요소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계획은 치밀한데 실행은 엉망인 낙차 구조
- 각 캐릭터마다 다른 방식으로 무너지는 상황 코미디
- 미인계 임무가 실패하고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반전
- 해커 원호가 혼자 못 열자 엄마(옥자)를 불러오는 장면
이 장면들이 연속으로 터지면서 관객이 숨 돌릴 틈 없이 웃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내러티브 템포(narrative tempo)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속도감과 장면 전환의 리듬을 뜻합니다. 게이트는 이 템포를 유독 빠르게 유지하기 때문에 스토리가 다소 허술해도 지루함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반전이 많은 영화는 복잡해서 피로하다고 알려져 있는데, 게이트는 반전을 단순하게 쓰는 게 특징입니다. 사채업자에게 금고를 털고 붙잡혔더니, 오히려 그 사채업자가 더 큰 금고를 털라고 시키는 구조. 이걸 보면서 "아 이게 케이퍼 무비의 탈을 쓴 생존극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점과 관객수가 엇갈린 이유, 그리고 지금 볼 이유
영화 게이트는 2018년 개봉 당시 관객수 대비 평점이 꽤 높게 나온 작품입니다. 흥행 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실제로 본 관객들의 만족도는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뜻입니다. 관객 만족도 지표인 CGV 골든 에그 지수(CGV Golden Egg Index)를 기준으로 보면, 이 지수는 실제 관람객이 직접 매긴 만족도를 백분율로 표시한 수치입니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라도 이 수치가 낮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합니다. 게이트가 후자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정려원이 2012년 이후 6년 만에 복귀한 작품이기도 해서, 개봉 전부터 팬들 사이에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기대감이 높은 복귀작일수록 실망도 크기 마련인데, 게이트는 오히려 기대치를 낮추고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국내 코미디 영화 흥행 분석에 따르면, 관객 수와 만족도의 괴리가 큰 장르 중 하나가 코미디라는 점도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됩니다.
여러 소재를 섞어서 만든 작품이라 장르적으로 무겁지 않습니다. 가족 갈등, 사채 문제, 범죄 코미디, 로맨스까지 건드리지만 그 어느 것도 너무 진지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덕분에 전체 분위기가 경쾌하게 유지됩니다.
게이트를 굳이 분석하면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그냥 틀어놓고 웃다가 끝났으니까요. 억지 설정이다, 개연성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코미디 영화에서 개연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많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머리 비우고 배우들 표정 하나하나 보면서 웃고 싶다면, 게이트는 그 용도로 꽤 괜찮은 선택입니다.